에세이

건전한 설교 예화?

제레미야 2020. 6. 26. 04:43

설교라는 장르의 글쓰기, 그리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잘한다, 잘하지 못한다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아무리 잘 쓴 원고라도 그것을 그대로 읽는다고 같은 효과가 나는 것도 아니다. 설교자와 원고의 조화도 중요하다. 

 

2002년 사랑의교회에서 있었던 조용기 목사 설교...

 

한국 전쟁 때 피난길에 자신을 희생하고 갓 태어난 아기를 살린 젊은 엄마로부터 아기를 구조하여 미국에 데려가 키운 선교사 부부 예화,,

 

히피로 살다가 노방전도에 이끌려 변화되어 새 삶을 살게 되었다는 성공적인 변호사이자 투자자문회사 경영인

 

곽선희 목사의 2004년도인가, 소망교회 창립 30주년 기념설교 

 

방탕하게 살기로 작심했던 두 청년이 길을 가다가 교회 앞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글귀를 보고

 

한 청년은 교회로 들어가고 나머지 한 청년은 가던 길을 감. 30년 후 교회로 들어간 청년은 미국 대통령이 되고, 나머지 한 청년은 무기징역을 받음.

 

교회는 변화가 있는 곳이다.

 

 

영락교회 청년부 설교 롬 14장 믿음이 약한 자를 받되. 비전 어쩌고...

 

히틀러와 칭기스칸. 수용성. 히틀러는 수용성 없어서 악당이 됨. 칭기스칸은 수용성 때문에 영웅이 됨.

 

 

이런 설교 예화는 단순하고 쉽고 직관적이며 공식(formula)이 쉽게 드러난다. 

 

그러나 지나친 단순화 때문에 도무지 그 중간단계를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그가 훌륭한, 가치 있는,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았다고 확언할 수 있는가?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겠지.

 

최종원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욕망과 종교적 금욕은 동전의 양면이다. 

 

칭기스칸이 과연 훌륭한 예인가?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고통 속에 몰아넣은 인물 아닌가? 

 

 

제대로 하려면, 정말 공부를 많이 하고, 또 설교에서도 해명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