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1장 9절 본문의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출처: Bibleworks 10
Oxford Bible Commentary (John Barton Eds. p.193)에 따르면 남편과 아들 둘을 모두 잃은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집으로 돌아가 새 남편을 맞이하라고 권하는 장면에서 나오미의 인식의 지평은 오직 '안전/정(security)'에 제한되어 있다(restricted). 그런데 개역개정 본문에는 '안전'이라기 보다는 '위로'라고 번역되어 있고, 영역본에서는 ESV와 NAS는 'rest(쉼, 안식)'으로, NRSV에서는 'security(안전/정)'으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번역상의 차이가 궁금하여 히브리어 본문을 찾아본 결과 '메누하'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히브리어 '메누하'는 여성 단수 절대형 명사로서 BDB에 따르면 먼저 '쉴 곳(resting-place)' 혹은 '쉼(res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시편 23편 2절에서 '쉴만한 물가(알-메 메누호트)'에 복수형(plural)으로 사용되었다. 그 다음 의미로 이 본문 룻기 1장 9절에서의 '메누하'의 의미로 BDB는 '결혼을 통해 획득하게 되는 쉼과 안정의 상태(condition of rest and security attained by marriage)'를 제시한다. 결국 rest와 security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메누하'는 남편을 잃은 여인들이 재혼을 통해 가장이 있는 가정의 범주에 소속됨으로써 경제적, 법적, 사회적 안정을 누리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어 역본인 개역개정은 '위로'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고, 새번역에서는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고 의역했다. 개역개정을 읽을 경우 재혼을 함으로써 남편과 시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위로 받으라는 권유처럼 보이고, 새번역을 읽으면 지나간 과거는 잊고 새출발 하라는 일종의 덕담을 건네는 것처럼 보인다.
세 남자와 세 여자로 이루어져 있던 가정에서 세 남자가 모두 죽어버린 상황은 고대 사회에서 심각한 사회경제적 위기로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양성평등(gender equality)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 가장으로서 가정을 꾸려 나가기 쉽지 않은데, 고대사회에서는 남성 가장이 없을 경우 법적, 사회적 지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실제로 룻이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후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으러 다닐 때 보아스는 남자 일꾼들(소년)에게 룻을 '건드리지 말라(not to touch)'고 명했다. 그러한 명령이 없을 경우 이방인이자 남편이 없는 룻은 상당히 취약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알기에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새로운 남편을 만나 빈곤한 처지에서 탈출하여 사회적 안정성을 되찾으라고 권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이해할 때 룻의 결단은 더욱 돋보인다.
룻은 모든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어떠한 안정성도 추구하지 않은 채, 전에 섬기던 신 대신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선택하며, 동족 대신 나오미의 백성 가운데 편입되어 살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이와 같은 룻의 결단은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간 아브라함의 결단에 비할 만하다(창12:1-3).
결국 나오미와 룻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게 되어 두 사람의 생계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오미는 룻에게 '메누하'를 되찾아 주려는 계획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마노아흐'를 언급한다.
룻기 3장 1절에서 '마노아흐'는 개역개정에서는 '안식할 곳'으로, ESV는 'rest'로, NAS와 NRSV는 'security'로 번역된다. BDB에 따르면 이 마노아흐는 'resting-place, state, or condition of rest(쉴, 혹은 정착할 장소 또는 상태)'로 정의된다. 베들레헴을 떠날 때에는 모압 땅에서 '거류(sojourn)'하는 신세가 되었고, 오랜 거류 생활 끝에 드디어 정착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착은 곧 안식을 뜻하기 때문에 개역개정의 번역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주신다고 약속하시는데(수1:13), 이 때 사용된 동사가 '메니아흐'로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단어다. 또한 이 단어는 노아의 홍수에서 비둘기가 정착할 곳을 찾지 못했을 때 사용되기도 했다(창8:9). 노아(히브리어로 노아흐라고 읽는다)라는 이름 또한 '쉼, 정착, 고요함' 등의 의미이기 때문에, 메누하, 마노아흐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물론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단어들이다).
룻의 마노아흐는 곧 나오미의 마노아흐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서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을 떠나면서 경작권을 판 토지를 되찾아 엘리멜렉의 기업을 다시 세워줄 수 있는 사람이다. 보아스가 율법에 따라 룻과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엘리멜렉의 기업을 되찾아 주는 과정은 경직된 율법 준수가 아니라 인애와 자비로 가득차 있다. 보아스의 인애, 룻의 인애로 하나님께서 각 가문에 허락하신 땅을 지킬 수 있었고, 그 결과 보아스는 아내를 얻었고, 룻과 나오미는 마노아흐, 즉 정착하고 안식할 곳을 얻었다. 그 가정에서 참된 이스라엘 왕 다윗이 탄생했다.
나오미는 처음에 룻을 위해 '메누하'를 추구했지만, 결국에는 '마노아흐'를 찾아주려는 계획으로 이어졌다. 성경은 비슷하지만 다소 미묘한 차이가 있는 두 단어를 사용했다. '위로'와 '안식'으로만 읽을 경우 자칫 정확한 의미를 놓칠 수 있기에 원문을 잠깐 살펴보았다. 룻기는 이 말고도 공부하며 얻을 수 있는 메시지가 엄청나다. 천천히 공부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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