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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

책을 읽다 보면 꼭 꼬리를 무는 책이 있다. 말하자면, 책을 쓴 사람이 다른 어떤 책을 보고서 그 책을 쓰게 되었다...라던가, 작중 화자가 어떤 책을 읽고서 인생이 어떻게 되었다...라든가 하는 거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작가가 읽은 책이라는 건데, 그런 책은 꼭 궁금해서 찾아보게 된다.

 

또는 책을 읽는 것은 작가와 만나게 되는 것과 같다고... 어떤 책을 인상깊게 읽으면, 그 작가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지고, 그 작가가 쓴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마련이다. 그런데 내 경우는 책을 적게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편은 아니어서, 남들이 읽고서 좋다좋다 말하는 책을 따라 읽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판이라, 나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잘난 사람들에게 작품성을 인정 받는 책을 대체로 읽게 되다 보니, 내가 주로 읽는 책의 작가들도 대부분 글 잘 쓰는 사람이고, 그러다보니 그 작가의 책을 조금 더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식으로 열심히 찾아 읽은 작가가 뭐 대표적으로는 박완서 선생님이 있겠고, 공지영, 신경숙, 이청준, 황석영, 김훈부터해서 최근에 알게 된 정이현, 김영하, 김연수, 박민규, 성석제, 김별아, 외국인으로는 톨스토이와 토스토예프스키, 빅토르 위고는 빼고라도 위화, 펄벅... 아 생각하자니 너무 많다.

 

이 김연수 씨로 말하자면, 요새 사람들이 하도 김연수 김연수 하길래 "밤은 노래한다"를 사봤고, 사실 그닥 큰 감흥은 없었는데, 그래도 하나는 더 보자 해서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사봤는데, 초반에는 또 그저 그렇더니, 좀 더 넘어가니까 빨려들더라. 김영하의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도 초반 세 네 편은 그닥 인상이 없다가도 좀 지나니 빨려드는 것이, 작가의 스타일에 어느 정도 적응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김연수는 이런 문장을 쓴다.

 

   "수많은 첫 문장들. 그 첫 문장들은 평생에 걸쳐서 고쳐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 그 역시 자신의 이야기가 "아마도 이런 날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그는 오래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시간에 늦는다고 말하며 그 교차로를 지나가던 그 순간부터"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지 않으리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됐다. 그로부터 인생은, 쉬지 않고 바뀌게 된다. 우리가 완벽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이야기는 계속 고쳐질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젠 그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첫 문장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어둠 속 첫 문장들 속으로 걸어갔다."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중에서

 

 

위에 써놓은 작가 중 김영하 씨는 팟캐스트도 재미나게 들었고, 소설가이면서도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는 것이 관심이 가 번역서도 사보게 되었다. 영어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해서. 그런데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고 나니 김연수 씨도 번역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또 좀 찾아보니 번역서가 상당히 많았다. 아, 낭패다. 번역서 중에 아는 작가는 레이먼드 카버 밖에 없다. 그나마도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통해 최근에서야 알게 된 작가다. 

 

아무튼, 사야 할, 혹은 읽어야 할 책, 아니 읽어 보고 싶은 책은 자꾸만 늘어만 간다. 며칠전부터 어제까지 책상 정리를 했는데, 그러니까 책상 정리를 했다는 것은 책상에 있는 걸 치웠다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할 책을 책상 위에 쌓아놓은 것이고, 그것이 빽빽하게 약 세 줄 정도가 되더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 번갈아 가며 읽고 있는 책이 존 쿳시의 "추락",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박완서 선생님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 김소연의 "마음 사전", 장 그르니에의 "섬", 스캇 핏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이다. 그나마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다 읽은 덕이다. 

 

누군가 나에게 책 선물을 하겠다고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아주 뻔뻔스럽게 생각하는 예산을 물어보고, 그에 알맞게 책 이름을 알려준다. 최근에 아는 사람 중에 책 선물을 해주겠다 해서 두 권을 얘기한 바 있다. 그리고 교보문고 회원 혜택을 유지하겠다는 핑계로... 그리고 쿠폰을 사용하겠다는 핑계로 주문을 넣어놓은 책이 5권인가 6권인가... 권수도 따지지 않는다. 금액으로 치면 56000원 가량이고, 쿠폰에 마일리지 등 다 합해서 할인한 금액이니, 원래는 약 75000원 가량 되는 책이다. 

 

이 책들이 집에 들어오기는 쉬운데, 나가기는 또 쉽지 않다. 도저히 다시 보지 않을 책을 헌책방에 팔겠다고 빼 놓은 책이 약 20여권 된다. 8년 전부터 사모은 책 가운데 고작 20권이다. 그나마도 헌책방에서 사지 않겠다 하면 버리든 누구를 줘버리든 해야 할 터이다. 부디 읽는 만큼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이길 바랄 밖에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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