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자랑이라는 걸 하려면 상대를 골라가면서 해야한다. 그러니까 이러이러한 책을 샀는데...라는 말을 하려면, 그 책이 어떤 책인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같이 테니스의 테자도 모르는 사람에게 테니스 라켓을 갖고와서 자랑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어제 오랫만에 친한 친구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를 만났다. "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엔 좀 나이가 들었지만, 그래도 "그"와 "그녀"라든가, 그 녀석... 이라든가 이런 표현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아이들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아이들이다. 만나기 전날 서점에서 사와서 이 아이들에게 내민 책은 세 권이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과 토니 모리슨의 "빌리바드",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역시나 책을 좀 아이들에게 보여주니 뭔가 반응이 있다. 먼저 남자 아이가 "대성당"을 보고 나에게 물었다. 아, 정확히는 "대성당"의 번역자에 대해서 물었다.
"형, 이 번역자 '김연수'가 바로 '그' 김연수에요?"
"어 맞어. 그 '김연수'야."
"그럼 이 사람은 작가가 되서 번역을 한 거에요? 아니면 번역을 먼저 했는데 글을 잘 써서 작가가 된 거에요?"
"잘은 모르겠는데 원래 둘 다 잘한 것 같은데? 영어 잘하나봐. 나는 김영하 씨만 번역 많이하는 작가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김연수 씨가 번역하신 책이 꽤 있더라고. '세상의 끝 여자친구' 중에 제목에 레이먼드 카버가 들어간 게 있는데, 사실 내용엔 레이먼드 카버는 전혀 나오지 않지. 그런데 이 책을 번역하는 중에 그 작품을 썼다고 하더라고. 나는 레이먼드 카버는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알았는데, 김연수 씨가 번역을 하셨다길래 이 책을 사봤지."
"아, 그렇구나, '세상의 끝 여자친구' 읽으면서도 몰랐네."
그러자 또 여자 아이가 말한다.
"아 이 책이 박완서 선생님께서 에세이에 쓰신 그 '대성당'이구나."
"그래? 박완서 선생님께서 이 책 이야기를 하신 글이 있어?"
박완서 선생님 글을 워낙 좋아해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는데, 혹시 놓친 글이 있나 싶어 물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 있잖아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그 중에 있어요."
"아 그렇구나, 나 그 책 샀는데, 읽기 아까워서 아껴가면서 보고 있어."
그러자 이 아이 흠칫 놀랐다.
"아아, 그런 기분 알 것 같기도 해요. 책장 넘기기가 아까운 그런 거."
그리고는 시선은 "빌리바드"로 옮겨갔다.
"형, 토니 모리슨은 누구에요?"
"어, 어떤 미국 작가래. 잘 몰라. 어디서 들었는데, 꼭 읽어보라 해서 그냥 샀어."
여자 아이가 물었다.
"그럼 이 책이 대표작이에요?"
"잘 몰라. 그냥 눈에 띄는 거 아무거나 산 거야."
나도 좀 그렇다. 책 고르는 것이 썩 기준도 없고, 내키는대로 끌리는대로 사고,
그러니까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버릇을 해서 그런데,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꽤나 시간이 흐른 후에 주문을 하곤 하는데, 막상 주문을 할 때면 왜 이 책을 골랐는지도 잊어먹기 일쑤이고, 심지어 책을 받고 나서는 이 책을 주문했었는지 조차 잊어버리는 일이 많은 것이다. 읽어야겠다, 필요하다 싶은 책은 사고 보는 내 성질 때문에 그렇다.
그리곤 또 물었다.
"책을 사면 다 읽어요?"
"응, 다 읽지. 사자마자 다 읽는 건 아니지만."
다 읽는다는 말에 잠시 놀랐다가 곧 김샌다는 표정이다.
"오빠는 책을 사는게 어떤 의미가 있어요? 책을 다시 팔거나, 남을 주거나 하진 않아요?"
이 아이 참 예리한 구석이 있다. 가끔, 아니 자주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내 삶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고, 그래서 내가 내 인생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래서 이 친구들을 자주 만나려 하는 것이다.
내게 책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때는 대답을 잘 못한 듯하다. 생각해보면 여러 이유가 있을텐데, 일단 나는 빌린 책은 잘 보지 못하는 편이다. 아주 가볍고 절대 두 번 보지 않을 책이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빌려 읽지 않는다. 그리고 책을 사는 것이 작가, 번역가, 출판사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물론 그들보다는 책을 판매하는 서점의 이익이 가장 클수도 있지만, 내가 한 권이라도 사는 것이 또 좋은 책을 만들어 내는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트위터에서 어떤 사람이 이야기했는데, 책을 다 읽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언제든지 필요할 때 자료를 찾을 수 있도록 책장을 자료 보관소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는 책의 70% 정도가 문학서적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 "찾아볼" 만한 책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내게 문학이란 내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되며, 갈 곳 몰라 방황할 때 길을 비춰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내 책상에,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바라보는 것은 큰 기쁨이 된다.
솔직히 책을 읽는 속도가 책을 사는 속도를 따르진 못한다. 또한 한 번 내 집에 들어온 책은 쉽사리 나가지도 못한다. 집에서 내가 운신할 폭은 좁아지지만 내 사유의 폭은 넓어지는 것이 책을 사고, 책을 읽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런 책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수백권의 책 이상의 귀한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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