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거창하지만 별 내용은 없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매우 좋아했다. 집에 있는 동화집, 위인전기, 아동 혹은 청소년 문학전집 등은 다들 몇 번씩 읽었다. 어디에 가든지 읽을 책을 항상 챙겼고, 또 늘 손에서 놓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흔히들 그러겠지만, 보물섬과 삼총사, 로빈슨 크루소 등은 읽고 또 읽어 책이 낡아 다 떨어질 때까지 읽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삼국지를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데, 아는 분께 빌려다 읽은 상중하 세 권짜리 조그마한 삼국지가 영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점에 가보니 여러 판본이 있는데, 내가 고른 것은 박종화 선생께서 쓰신 총 여덟 권짜리 삼국지였다. 한꺼번에 모두 살 수가 없어서 먼저 두 권을 사서 다 읽으면 다시 두 권을 사고, 이렇게 하는데 결국 1주일 만에 전권을 다 사게 되었다. 그 후로도 삼국지는 30번 정도 읽었던 것 같다.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인터넷 서점에서 책 사는 재미를 붙였었는데, 당시 출판된 장정일 삼국지가 너무 재밌어 보여 또 사고 말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책을 많이 읽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고전”이라는 것에 제대로 눈을 뜨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친구 중에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보는 것이 멋있어 보여 “지와 사랑”, “데미안” 등을 따라 읽다. 나중에 머리가 조금 더 굵어지고 나니 헤르만 헤세의 사상은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학교 시절 만났던 큰 작품 하나는 바로 펄 벅의 “대지”였다. 인물과 배경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생생해서 그 때 책을 읽으면서 받았던 각 인물에 대한 인상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하 소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어떤 책인지도 모르고 집어 든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은 총 열 권인데 도서관에서 빌려 단숨에 다 읽었다. 최명희 선생의 “혼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 황석영 선생의 “장길산” 등을 재미있게 보았다. 닥터 지바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분노의 포도 등 서양 고전도 틈나는 대로 가리지 않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다. 2학년 때였는데, 친구가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세 권짜리 완역본을 가지고 있었다. 장장 1500 페이지가 넘는 거대한 소설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장발장과 쟈베르, 코제트 이런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책이 이렇게 두꺼울까 의아하였지만, 프랑스 혁명이라는 격동기를 거치는 동안의 모습을 담아내기에는 전혀 넘치지 않은 분량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 장발장이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여름방학 보충수업 시기에 자습시간이었는데, 비어 있는 1학년 교실로 혼자 달려가 펑펑 울다가 나와서 간신히 책을 끝냈던 기억이 난다.
대학시절의 초반에는 그전만큼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다. 대학에 가서는 책을 천 권 이상 읽으리라 다짐하였건만,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랴, 이전에 못해본 이런저런 활동하랴 책 읽을 틈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뒤늦게 다시 책 읽기에 발동을 걸었을 때는 여러 훌륭한 한국 작가를 만날 수가 있었다. 여러 작가들 가운데서도 공지영과 김훈의 글이 나에게는 좋았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으면서도 여러 차례 울지 않을 수가 없었고, 사형제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레미제라블을 읽고서 생각했던 것은 죽기 전에 이런 소설 한 권만 쓸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지영 씨의 소설을 읽으면 나도 이렇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글 쓰는 일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에게 거대한 벽으로 다가오는 두 명의 작가가 있다. 이 두 사람의 글을 읽으면 내가 너무나도 하찮고 먼지 같아 보여 나 까짓 것이 어떻게 글을 쓴다고 설쳐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도저히 이 이상의 글을 쓸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글이다. 이 두 사람은 바로 박완서 선생님과 중국 소설가 위화이다.
박완서 선생님은 한국 문단의 큰 별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인생에 대한 통찰력, 인생의 깊이를 맛볼 수 있도록 해주는 훌륭한 분이시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이상의 위대한 존재이다. 박완서 선생님 작품 중에 처음 만난 것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였다.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추천도서로 선정하였던 것에 흥미를 느껴 사서 읽었다. 이 책은 선생의 유년기를 담은 소설인데, 읽어보면 아주 “특별하지 않은” 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냥 어린 시절 당신께 일어났던 일을 쭈욱 서술해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특별한 사건이나 반전도 없는데도 그 긴장감을 팽팽하게 끌어올렸다가 한 순간 놓아버리는 글쓰기에 놀라버렸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까 놀라 차례로 선생의 소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다. 다음으로 선생의 20대 초반의 이야기가 담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와 “나목”, 잔잔한 감동을 주는 “엄마의 말뚝”,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 젊은 시절 첫사랑을 돌아보는 “그 남자네 집” 등이었다. 산문집으로 “잃어버린 여행가방”과 “호미”도 사서 읽었다. 선생의 작품 중에 나에게는 한 가지 분수령이었던 것은 바로 “미망”이었다. 지금은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새로운 제목을 갖고 있다. 조선 말기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한국전쟁 당시까지 한 개성상인 집안의 딸 태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이 소설에 대하여 구구절절 나의 감상을 적는 것 자체가 모욕인 듯싶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 머리 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전류가 흐르듯이 찌릿하고서 내려오는 전율이 내가 받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두 번째로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마지막 장을 넘길 때 동일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저항할 수 없는 감동, 그것이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의 깊이이다.
위화라는 작가는 내가 좋아하던 영화 장예모 감독 공리 주연 “인생”의 원작을 쓴 소설가라고 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사람의 대표작은 아무래도 “인생”이겠지만, 먼저 읽은 책은 “허삼관 매혈기”였다. 박완서 선생님은 호흡이 길고 자세하게 묘사를 하는 만연체인 반면에, 위화의 글은 반대로 매우 간결하게 글을 써 나갔다. 번역자의 문체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작가의 스타일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한다. “인생”을 드디어 사서 읽게 되었을 때는 굉장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매우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상당히 인상 깊게 읽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네 번 정도 울었다. 책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놀랍다고 할 수 있을까. 반드시 울어야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토록 간결한 문체로 나의 감정과 이성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책을 놓고 나서는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랄까.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푸구이 노인, 부모, 아내,자식들. 영화 “인생”을 보기는 하였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원작 속의 인물과 집, 거리의 모습은 다른 것이었다. 사실 위화는 인물이라던가, 배경이라던가 시시콜콜 자세히 설명하는 타입이 아니다. 아주 대강의 모습을 던져 주는데, 나의 상상력이 자동으로 나머지를 채우게 된다. 그것이 너무나도 신기하였다. 그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서 한 폭의 그림, 한 편의 영화처럼 지나가게 되는지.
이 두 작가는 나에게 각기 다른 스타일로 감동과 위화감, 존경심, 그리고 좌절감까지 동시에 안겨준다. 너무나도 선망하여 따르고 싶지만, 따르기엔 너무나도 멀고 높아 보이는 그 곳. 내가 받았던 것과 같은 그 큰 감동을 나도 줄 수 있을까. 그 받은 감동이 너무 크기에 도저히 따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큰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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